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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세부에서 치른 돌잔치

라이프인세부 2024. 12. 11. 17:09

필리핀 세부에서 아기의 돌잔치

소박하게 집에서 치르는 돌잔치

어찌어찌 딸이 태어났고 아들과 마찬가지로
여기 필리핀 세부에서 돌잔치를 보내게 됐다.
 
아들의 돌잔치는 당시에 필리핀 현지 직원들이 많아서
다 같이 밥을 먹자는 의미에서 좀 크게 준비했었다.
음식들도 많이 준비했는데 대체 무슨 음식을 준비했었나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 한식이랑 필리핀 현지식으로 이것저것 잔뜩 요리하고 배달했었던 것 같다.
 
아들이 원체 까탈스러운 성격이어서 (못 움직이게 하면 운다) 자꾸 돌상을 헤집으려 하고 밖으로 나가서 놀려고 해서 초고속으로 돌잡이를 하고 끝났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아기 딸은 태어나서 100일 정도까지만
끄아앙 울고 끝이었고 그 후로 집에 있는 듯 없는 듯
얌전한 아기였다. 어쩔 때는 창가 옆 소파에 뉘어 놓으면ㅜ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아기 딸은 돌이 될 때까지 내가 너무 일이 바빠서
어떻게 큰 지도 잘 몰랐다. 어느 날 보면 머리숱이 봉긋 올라왔고 어느 날 보면 웃음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꼭 복숭아 같았다.
한 번은 까르르 웃는 것을 보니 앞 니가 위아래 4개가 나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시터 품에서 나고 시터와 24시간을 생활해서 내가 엄마인지도 모르는 아기였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한테는ㅠ그러지 않는데 내가 안아주면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가ㅜ내 얼굴에 10분의 1도 안 되는 손으로 가만가만 만지곤 했다.
 
딸의 생일 열흘 전쯤에 이사를 했다.
이사는 여러 번 해본 탓에 (필리핀 세부는 포장이사가 없다) 아주 빠르고 신속 정확하게 단 이틀 만에 집정리를 마쳤다. 그렇게 이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딸의 생일파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간결하고 소박하게, 하지만 추억은 많은 돌잔치

이번에는 굳이 사람들을 부르지 않고 집의 식구들만 함께 하기로 했다. 미리 딸의 드레스와 아들의 정장을 주문했다. 11살 어린이 딸이 입으면 숙녀처럼 보일 드레스도 함께 주문했다.
옷을 사러 갈 만한 쇼핑몰은 모두 시티에 있고 시티까지 가서 아이들의 옷을 구매하러 갈 여유가 없었다.
시터들의 드레스도 사이즈에 맞춰서 함께 주문했다.
필리핀은 파티를 할 때 초대한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옷으로 입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 크리스마스나 신년 혹은 누군가의 생일 때 가족의 성이 프린트된 티셔츠나 얼굴이 프린트된 옷을 준비해서 함께 입는다. 그래서 티셔츠 프린트업체가 상당히 많이 있다.
 
무슨 달걀의 난각번호처럼 그저 딸의 이름이나 생일을
프린트한 티셔츠를 입고 싶지 않아서 하얀색의 드레스로 준비했다. 나는 미색의 원피스가 있어서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케이크와 풍선도 주문했고 바닥에 풍선이 잔뜩 깔리도록 아침부터 많이 많이 불어 두었다. 비싸고 좋아 보이는 장식을 잔뜩 둘 만큼 감각 있는 사람도 아니고 어차피 집에서 하는 돌잔치, 이왕이면 아기가 더 돋보이고 예쁘게 사진에 나오기를 바랐다.
 
 

 
돌상도 굳이 화려하게 하지 않았다.
어차피 집에 있는 테이블도 하얗고 작은 테이블이어서
아기가 앉으면 딱 알맞은 사이즈였다.
 
아기만 잘 돋보이면 되기에 화려하게 하지 않았고
아들이 보채지 않고 신나게 놀 수 있게 풍선만 잔뜩 바닥에 두었다.
 
아기의 드레스가 아이보리색이어서 풍선은 대부분 화이트와 골드로 주문했고 케이크도 하얀 생크림 케이크 위에 골드 장식 토퍼들을 올려둔 심플한 케이크로 주문했다. 케이크 조차에도 이름과 생년월일,
Happy Birth Day 이런 것조차 쓰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아기의 미역국을 끓이고 등갈비로 갈비찜을 했다. 그 외에 파티 음식은 근처 레스토랑에서 모두 주문을 했다. 이삿날 지인들과 가본 후에 웬만한 음식들이 깔끔하고 맛있어서 문의하니 파티 음식이 주문이 가능하 다해서 3일 전에 주문도 완료했다.
 
 
 

 
 

모두가 함께 배부르고 아기가 행복한 돌잔치

늘 시터 품에서만 놀던 아기는 지 생일인걸 아는지
돌상 의자에 앉아서도 가만히 사람들만 쳐다보았다.
머리에 예쁜 리본을 둘러주어도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상주시터들이 휴무를 내면 대타로 와주는 엑스트라 시터들도 불러서 다 함께 밥을 먹었다. 직장에서 몇몇 직원들이 듀티를 마치고 집으로 와줬다. 아기의 생일이 더 풍성했다.
 
셋째 아기의 특별한 화려함도 거창한 행사도 없었다.
첫째 어린이 돌잔치에는 6개월 전부터 식당을 예약하고 온 가족들을 불러서 그럴듯한 음식들 한가득 차려놓고 사회자가 행사 진행하고 동영상 틀고 부끄럽게 감사 인사하는 누구나 다 하는 돌잔치를 했었다.

둘째 아기때는 여러 사람 불러서 시끌벅적하게 2차 술자리까지 이어지는 돌잔치도 했었다.
 
아기도 편하고 엄마인 나도 그리고 엄마 역할을 도맡아 하는 시터도 편했던 돌잔치는 셋째 아기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내 역량을 잘 알기에 너무 힘주려 하지 않는다.
괜히 오버하고 과하게 준비하면 꼭 마음먹은 만큼 되지 않아 최대한 간소하고 미니멀하게 시작하자는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습관처럼 잡게 됐다. 내가 무리한 욕심을 부리면 나뿐만 아니라 주변 모두가 지치게 되는 일을 너무 많이 봤다.
 
거의 2시간 내내 아기 의자에 앉아서 영문도 모르는 축하와ㅜ사진촬영을 당할 때도 한 번도 칭얼거리지도 않았으며 돌잡이도 특유의 늘 의문 있는 표정을 지으며 잘 따라왔다. (첫째 어린이는 전통 돌잡이로 연필을 뜻하는 붓을, 둘째 아기는 청진기를 셋째 아기는 연필을 잡았다.)
 
마지막 손님은 첫째 어린이의 과외선생님이었는데
그때서야 아기가 조금씩 칭얼거리다 이내 졸린 듯 계속 울었다.
같이 사진 찍는다고 아기 의자에 앉히자마자 5분도 안 돼서 울고 불고 난리가 난 아들에 비해 훨씬 얌전한 편이기도 했다.
 
보통 집에서 파티를 많이 하는 필리핀 문화에 따라서 
나도 그렇게 둘째 아기와 셋째 아기의 돌잔치를 해보았는데 때에 따라, 번잡스럽게 어디를 이동하고 여기저기 꾸미고 음식을 요리하고 준비하며 품을 들이는 것보다는 적당한 장식으로 사진으로 아기도 돋보여주고 굳이 음식을 하며 나부터 시터까지 고생하지 않아서 좋은 듯하다.
 
다음의 돌잔치는 없지만, 거진 1년이 흘러간 이 시점에서도 가끔 그날의 돌잔치가 떠오르는 것 보면 충분히 내 역량으로 만족했던 돌잔치가 아니었나 싶다.